
전쟁은 엑셀표 위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매년 환호하는 '한국 군사력 세계 5위'라는 타이틀은 무기 수량을 단순 합산한 결과물입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 웹사이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에서 발표하는 이 순위표를 두고, 정작 국내외 안보 전문가들이 고개를 젓고 있습니다.
GFP 지수의 치명적 한계
GFP 지수가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중적 흥미거리 이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출 방법론의 치명적인 한계 때문입니다.

이 기관은 인구, 병력, 무기 수량 등 60여 개 요소를 바탕으로 국가별 재래식 전력의 잠재력을 수치화합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무기의 세대별 성능과 질적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소음이 심해 생존성이 떨어지는 구형 디젤 잠수함과 최신형 핵잠수함이 평가표 위에서는 똑같은 '잠수함 1척'으로 취급됩니다.
현대전의 판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핵무기는 메인 지표가 아닌 단순한 가산점 형태로만 반영됩니다.
한국 안보의 핵심 뼈대인 한미동맹의 지원 구조도 개별 국가의 순위에 녹아들지 않습니다.
동맹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공유나 연합 작전 능력이 완전히 제외되는 것입니다.
결국 한 나라가 고립된 상태에서 재래식 무기만으로 싸운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매겨진 순위인 셈입니다.
공신력 있는 싱크탱크들의 평가 방식
국제전략연구소(IISS), 랜드(RAND) 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공신력 있는 안보 싱크탱크들은 이런 일렬 줄 세우기식 평가를 지양합니다.

IISS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 군사력 기준서 '밀리터리 밸런스(The Military Balance)'는 순위표를 아예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각국의 훈련 수준, 장비 노후화 정도, 방위 산업 기반 등을 종합적인 맥락으로 서술합니다.
실제 전쟁 수행 능력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RAND 연구소는 전력을 평가할 때 겉으로 드러난 장비의 수량보다 다른 요소를 우선시합니다.
병력의 신속한 전개 속도, 준비 태세, 장기전을 버텨낼 수 있는 군수품 보급 능력을 훨씬 무거운 핵심 변수로 취급합니다.
CSIS는 동맹국 간의 전력을 평가할 때 무기 체계의 상호운용성을 억지력의 최우선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지휘통제의 통합 수준도 중요한 평가 요소입니다.
진정한 군사력의 의미
이들 전문 기관의 시각을 빌리면 진정한 의미의 군사력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탱크와 전투기가 몇 대 있느냐'에 머물지 않습니다.
'유사시 동맹과 얼마나 빠르고 지속적으로 연합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가 21세기 현대전의 진짜 무기입니다.
한국군의 실질적인 위력은 GFP가 집계한 양적 수치 너머에 존재합니다.
한국군의 진정한 강점
세계 최고 수준의 한미연합 지휘 체계가 첫 번째 강점입니다.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의 매끄러운 전개 능력이 두 번째 강점입니다.
소모된 포탄과 부품을 신속하게 채워 넣을 수 있는 강력한 방위산업 역량이 세 번째 강점입니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우리의 진짜 군사력이 완성됩니다.
단순한 숫자 합산에 불과한 순위표에 갇혀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다른 관점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 전력과 동맹의 통합 작전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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